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에다 히데히토 (문단 편집) == 개요 == うえだひでひと / 植田秀仁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생몰년도는 1953년 11월 3일 ~ 2015년 6월 28일. (향년 61세) [[야마나시현]] 출신. [[고쿠가쿠인대학]] 졸업. 원래는 [[만화가]]를 지망했었지만 애니메이션 업계로 눈을 돌리고 대학 재학 중 [[타츠노코 프로덕션]]에 연수생으로 입사한다. 여기서도 처음에는 작화부를 지망했었지만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동시에 연출부로 배속되면서 연출가의 길을 걷게 된다. 스승은 [[토리우미 히사유키]]와 [[사사가와 히로시]]로 그들의 제자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났던 [[오시이 마모루]], [[마시모 코이치]], [[니시쿠보 미즈호]]와 함께 '타츠노코 사천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천왕 멤버 중 저 3명은 모두 자신의 연출색이 강해 각본을 무시하고 콘티 단계에서 수정하기로 유명했는데 우에다 히데히토만 각본을 존중하고 고치지 않는 타입의 연출가였다. 각본가 [[코야마 타카오]]는 그래서 우에다 히데히토와 일할 때가 가장 편했다고 회고했다. 각본가 사카이 아키요시(酒井あきよし)도 우에다와 자주 작업했다. 각본가 [[세키지마 마요리]]를 키워내기도 했다. 그 연출 실력은 다른 3인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와 액션 연출 모두 실력이 뛰어났으며 연출은 기백이 느껴져야 함을 강조했다. 인성도 좋아 따르는 후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토리코(TVA)|토리코]]를 제외하면 왠지 메이저한 작품이 적었던, 당대엔 좋은 반응을 얻어도 후대에는 왠지 잊혀지는 경우가 많았던 비운의 감독에 들어간다. 대중을 무시한 작품을 만든 것도 아니고 예술 작품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정말 운이 없었다. 다만 토리코 초중반을 엄청난 작화와 연출로 호평을 끌었던 [[자코 아키후미]]와는 달리 토리코 팬들에게는 후반 밋밋한 연출로 안티가 많은 편이다. 화면과 작화를 입체적으로 잡아내며 [[후쿠토미 히로시]]처럼 회전하는 카메라 앵글과 배경까지 작화로 해서 움직이게 만드는 배경 동화 연출을 많이 쓴다. 가장 흥행한 작품은 토리코이며 팬들은 [[역전 잇파츠맨]]을 그의 최고 명작으로 꼽는다. 잘부탁해 메카독도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 '열사의 패왕 간다라'도 좋은 평을 얻었다. 그리고 일본 및 세계적으론 매우 마이너한 작품인데 유독 중국에선 '매일이 일요일'이 유명하다. [* OVA 주고객은 작화를 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작화에 문제가 있어 일본에선 흥행에 실패한 마이너 작품이다. 그러나 중국에선 [[VCD]]시절 연출이 호평을 받아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작품이 방영이 안 되거나 마이너해서 별로 관심을 못 받는 감독이다. 한국에서 방영되고 인기를 얻었던 작품은 불꽃의 알펜로제(알프스의 장미)가 있다. [* 다만 이 작품은 일본에선 방송국의 편성 변경으로 조기종영되어 결말이 이상한 걸로 악명이 높아 별로 인기가 없는 작품이다. 한국 방영 특수인 셈.] 죽기 바로 전에는 [[걸즈 앤 판처]]의 붓글씨를 담당했으며 메카닉 감수를 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같이 일하는 감독은 [[이마가와 야스히로]], [[코지마 마사유키]], [[미즈노 카즈노리]], [[사다미츠 신야]]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